
수경재배로 키울 수 있는 식물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아내가 "흙 없이 식물을 키울 수 있다"고 했을 때 장난인 줄 알고 한동안 우겼으니까요. 직접 찾아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활발하게 쓰이는 재배 방식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던 이유, 그리고 수경재배가 뭔지
저희 부부는 서로 가짜 정보를 진짜처럼 말해서 놀라게 하는 장난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흙 없이 식물을 키울 수 있어"라고 했을 때도 그냥 또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식집사 초보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안다는 식으로 맞받아쳤는데, 결국 찾아보니 제가 틀렸습니다.
수경재배(Hydroponics)란 토양 없이 물과 영양액만으로 식물을 키우는 재배 방식을 말합니다. 땅 대신 물에 녹인 영양분을 뿌리에 직접 공급하기 때문에 식물이 필요한 것을 훨씬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수경재배 환경에서는 전통 토양 재배 대비 물 사용량을 최대 90%까지 줄이면서도 수확량은 오히려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FAO(유엔식량농업기구)).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수경재배가 모든 식물에 통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고, 그냥 아무 식물이나 물에 담가두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경재배에 적합한 식물은 뿌리가 얕고 섬유질이 많으며, 지속적인 수분 환경에서도 뿌리썩음병이 생기지 않는 종이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무시하고 아무 식물이나 시작했다가는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어렵습니다.
수경재배에 잘 맞는 식물과 그 이유
아내가 이미 키울 식물 리스트를 정리해 두었는데, 보니까 꽤 잘 골라놨습니다. 바질이 첫 번째였는데, 제가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허브가 수경재배에 이렇게 잘 맞는 작물인 줄 몰랐거든요.
수경재배에 어울리는 식물들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뿌리가 얕고 섬유질이 풍부해 영양액에서 흡수 효율이 높은 식물
- 수분 함량이 높고 물 기반 환경에 생리적으로 적응된 식물
- 자가수분(Self-pollination)이 가능하거나 별도 수분 과정이 필요 없는 식물
- 성장 속도가 빠르고 수확 주기가 짧은 식물
자가수분이란 꽃가루가 같은 꽃이나 같은 식물의 다른 꽃으로 이동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벌이나 나비 같은 외부 매개체 없이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토마토, 고추, 가지가 대표적이라 통제된 실내 환경에서도 수확이 가능합니다.
잎채소 중에서는 버터헤드 상추와 로메인 상추가 초보자에게 적합합니다. 상추류는 pH 5.5~6.5 범위에서 가장 잘 자라는데, pH란 수소 이온 농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 범위를 벗어나면 식물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합니다. 허브 중에서는 바질이 대표 작물입니다. 빠르게 자라고 향도 강해지며, 끝부분을 자주 잘라주면 꽃대가 올라오는 것을 억제해 잎 품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근이나 비트처럼 깊게 뻗는 뿌리채소, 수박이나 단호박 같은 대형 덩굴식물은 수경재배에 맞지 않습니다. 공간 효율이 극히 낮고 구조적인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수경재배를 시작하기 전에 챙겨야 할 관리 포인트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흙만 없으면 관리가 쉬울 것 같았는데, 오히려 신경 써야 할 수치들이 더 많더군요.
가장 기본은 EC(Electrical Conductivity, 전기전도도) 관리입니다. EC란 영양액 속에 녹아 있는 영양분의 전체 농도를 전기적 신호로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값이 너무 낮으면 식물이 영양 결핍 증상을 보이고, 반대로 너무 높으면 삼투압 스트레스로 잎 끝이 타거나 열매가 갈라질 수 있습니다. 식물 종류에 따라 필요한 EC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물 온도와 용존산소(DO) 입니다. 용존산소란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의 양으로, 수치가 낮아지면 뿌리가 산소 부족 상태인 혐기성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뿌리썩음병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이상적인 수온은 20~22°C이며, 온도가 올라갈수록 물속에 녹을 수 있는 산소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여름철 관리가 특히 까다롭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실내 습도 문제였습니다. 수경재배 식물이 늘어나면 실내 수분 증발량도 함께 올라가 과습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것이 다른 화분 식물들의 곰팡이병이나 뿌리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 부분은 환기와 공기 순환을 함께 챙겨야 완화가 가능합니다. 국내 실내 공기질 관리 기준에서도 적정 상대습도를 40~60% 범위로 권고하고 있는데(출처: 환경부), 수경재배 식물이 많아질수록 이 수치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물을 얼마나 자주 교체해야 하는지도 처음에 몰랐습니다. 그냥 물 담아두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영양액은 식물이 흡수하면서 농도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일정 주기로 교체하거나 농도를 보충해줘야 합니다. 관리가 소홀해지면 세균이 번식하고 뿌리 상태가 나빠집니다.
수경재배는 생각보다 정밀한 재배 방식입니다. 아내 덕분에 뒤늦게 알게 된 셈인데, 처음엔 틀렸다고 우기다가 결국 배운 게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시작한다면 바질이나 버터헤드 상추처럼 관리가 비교적 단순하고 성장이 빠른 작물부터 경험을 쌓는 것이 좋습니다. 무작정 다양한 식물을 한꺼번에 시작하기보다 하나씩 적응하면서 EC와 pH 감각을 먼저 익히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