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병의 80%는 예방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 건강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유전이냐 습관이냐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저로서는, 이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걸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후성유전학이 알려준 것, 유전자는 운명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부모님 건강뿐 아니라 장인어른 장모님 건강까지 챙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아프시다는 말씀 한 마디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 질환의 가족력을 먼저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부터 어떤 병을 앓으셨는지 물어보고 정리하는 게 실질적인 예방의 첫걸음이라는 걸 직접 해보니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후성유전학이란,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생활 방식이나 환경에 의해 특정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지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유전자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반드시 발현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전적 소인(Genetic Predisposition), 즉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성질을 타고났더라도 생활 습관이라는 변수가 그 스위치를 끄거나 켤 수 있다는 겁니다.
고혈압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 변이는 300가지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위험 유전자를 가지고 있더라도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만으로 심장 질환 위험을 3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상 느끼기에도, 유전이라는 이유로 체념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훨씬 실질적인 접근입니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APOE4 유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APOE4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평균보다 2~3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변이를 뜻합니다. 두 개를 물려받으면 위험이 12배까지 올라간다고 하지만, 란셋 신경학(Lancet Neurology)에 발표된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환자의 약 3분의 1은 식단이나 운동처럼 스스로 조절 가능한 요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The Lancet). 유전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습관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식단: 가공식품보다 채소, 과일, 통곡물, 저지방 단백질 중심의 자연식
- 신체 활동: 주 150분 중강도 운동(빠르게 걷기, 정원 가꾸기 등 일상 활동 포함)
- 흡연 여부: 심장 질환의 가장 큰 위험 인자 중 하나로, 유전적 소인과 무관하게 위험을 높임
- 음주량: 제2형 당뇨병 등 대사 질환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줌
가족력으로 예측
제가 직접 목격한 가장 인상 깊은 사례는 장인어른의 경우였습니다.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시던 분이었는데, 정기 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운동을 그렇게 하셨는데 왜 혈당이 높아졌을까 싶었거든요.
제2형 당뇨병(Type 2 Diabetes)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제2형 당뇨병이란 인슐린 분비가 불충분하거나 인슐린에 대한 세포 저항성이 높아져 혈당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대사 질환입니다. KLF14, ENPP1을 포함한 여러 유전적 변이가 발병 위험을 최대 30%까지 높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식습관이나 활동량 같은 생활 요인이 그 유전자 발현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Diabetes Prevention Program)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중한 식단과 운동 계획만으로 당뇨병 발병 위험을 약 65%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혈당 강하제인 메트포르민을 복용했을 때의 위험 감소 효과는 35%에 그쳤습니다(출처: CDC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 약보다 생활 습관의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된 셈입니다.
시작한 혈당관리, 그 결과
장인어른은 진단을 받은 뒤 기존 운동 습관에 더해 카무트(Kamut) 쌀을 물에 불려 씹어 드시는 식습관을 하나 추가하셨습니다. 카무트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원시 밀의 일종으로, 일반 백미에 비해 혈당 지수(GI, Glycemic Index)가 낮고 식이섬유와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혈당 지수란 특정 식품이 혈당을 얼마나 빠르게 높이는지 나타내는 수치로, 낮을수록 혈당 관리에 유리합니다. 꾸준함 하나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으시는 분이라 하루도 빠짐없이 드셨고, 6개월 뒤 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도 정말 기뻤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개인 사례가 아닙니다. 생활 습관 변화가 유전적 소인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옆에서 지켜본 일이었습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만으로 제2형 당뇨병 사례의 약 90%를 예방할 수 있다는 추정치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그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할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의 병력을 파악하는 것은 체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식단을 조금 바꾸고 걷는 시간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습관 하나가 유전자 스위치를 끄는 첫 번째 버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에 이상이 느껴지신다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webmd.com/healthy-aging/features/genes-or-life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