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지 저하 치매 어르신과 전화 소통 가이드 (인지 저하, 소통 방법, 관계 유지)

by 머니머니돈워리 2026. 5. 22.

 

솔직히 저는 치매 어르신과의 전화 통화가 그냥 '어렵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족이 그 상황에 놓이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 문제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치매 환자와의 전화 통화는 단순히 대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인지 저하가 전화 통화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치매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기능 중 하나가 단기 기억(short-term memory)입니다. 단기 기억이란 방금 들은 정보, 오늘 있었던 일, 조금 전에 나눈 대화처럼 새롭게 입력되는 정보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능력입니다. 치매 초기부터 이 단기 기억이 손상되기 때문에, 전화를 끊은 지 몇 분도 안 되어 통화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대면 상황에서는 이 문제가 조금 완화됩니다. 표정, 몸짓, 시선, 공간의 친숙함 같은 비언어적 단서(non-verbal cue)가 보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비언어적 단서란 말이 아닌 신체 언어나 환경적 맥락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신호를 뜻합니다. 상대방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이고 안전하다'는 감각이 작동하는 겁니다. 그러나 전화 통화는 이 모든 것을 차단합니다. 목소리만 남습니다.

여기에 배경 소음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청각 처리 능력(auditory processing)이 저하된 치매 어르신에게 TV 소리나 복도의 소음은 대화에 집중하는 것 자체를 방해합니다. 청각 처리 능력이란 귀로 들어온 소리를 뇌에서 의미 있는 정보로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인지 저하가 진행될수록 이 능력이 함께 약해지기 때문에, 같은 소음 환경이라도 치매 어르신에게는 훨씬 큰 부담이 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모습을 여러 차례 옆에서 봤습니다. 할머니가 어머니 이름을 잊으신 뒤로는, 통화를 시도할 때마다 할머니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어떤 날은 기억하시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전혀 낯선 사람과 통화하듯 굳어버리셨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전화를 끊고 나서 아무 말 없이 앉아계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치매 진행 단계와 전화 통화의 어려움은 대체로 비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학회(Alzheim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경우 초기에는 언어적 소통이 비교적 유지되지만, 중기 이후부터는 대화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크게 어려워집니다(출처: Alzheimer's Association). 전화 통화가 특히 힘든 이유는 바로 이 시기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치매 어르신과의 전화 통화, 실제로 통하는 소통 방법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통화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를 고민하다 보면 여러 방법들을 접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방법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방법을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도움이 됐던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통화 시작 시 먼저 자신을 소개한다. "저 OO예요, 엄마 딸이에요"처럼 관계를 함께 말한다.
  • 오전 시간대를 활용한다. 오후로 갈수록 피로와 혼란이 심해지는 일몰 증후군(sundowning)이 나타날 수 있다.
  • 통화 시간을 짧게 유지한다. 10분 이하의 집중된 통화가 45분의 길고 지친 통화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 사실 확인보다 감정에 맞춘다. "그거 맞아요?"보다 "그때 정말 좋으셨겠다"가 대화를 이어간다.
  • 과거의 친숙한 기억을 끌어낸다.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은 단기 기억보다 훨씬 오래 보존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몰 증후군(sundowning)이란 치매 어르신이 오후 늦게부터 저녁 시간대에 혼란, 불안, 초조감이 급격히 심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할머니와의 통화를 주로 오전에 하셨던 이유를 나중에서야 이해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은 할머니 상태에 맞춰 조율된 시간이었던 겁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장기 기억의 특성입니다. 치매가 진행되어도 수십 년 전 기억은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가 할머니와 복숭아 잼을 만들던 이야기, 할머니의 된장찌개 레시피 이야기를 꺼낼 때 할머니가 갑자기 생기를 띠시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세부 기억은 흐릿해져도 그 기억에 붙어 있는 감정은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혼란이 생겼을 때 바로잡으려는 시도, 이게 제가 보기에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그게 아니잖아요"라는 말은 어르신에게 현재의 혼란을 더 크게 의식하게 만듭니다. 대신 "그렇구나, 그때 어떠셨어요?"처럼 방향을 부드럽게 틀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국내 치매 관련 연구에서도 정서 중심 접근법(person-centered care)이 인지 중심 교정보다 치매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중앙치매센터). 정서 중심 접근법이란 사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어르신의 감정 상태를 우선으로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 있는데, 결국 이건 정답이 하나가 아닌 문제라는 걸 인정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방법의 효과는 치매 이전에 그 관계가 어떻게 쌓여왔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수십 년의 요리 기억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소통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연결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연결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할머니가 어머니의 이름을 잊은 날들에도 통화를 계속하셨던 어머니의 선택이, 어느 날 다시 "OO야"라고 이름을 불러주시는 할머니로 돌아오게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치매는 관계를 완전히 지우지 못합니다. 다만 접근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할 뿐입니다.

 

 

소통을 포기하는 순간 단절은 실제로 빨라집니다. 불완전한 대화라도 지속하는 것이 감정적 연결을 유지하는 데 유효하다는 것, 이것이 제가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과 전화 통화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완벽한 대화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친숙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또는 치매 돌봄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돌봄 방법은 치매 전문의 또는 치매 케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seniorstar.com/blog/how-to-talk-to-someone-with-dementia-on-the-phone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경제적 자유